어머니 : 추운데 왜 나와있냐. 어여들어와 아침먹어야지.
어머니 : 뭐가 있냐?
오장환 : 아니에요.(탁탁)
까마귀 한마리 게을리 노래하며 감나무 위에 안얹다.
자숫물 그릇엔 어름덩이 둘 <아침> -오장환-
비운의 역사 속에서 항상 고향을 그리워하고 조국의 현실을 아파하던 영원한 보헤미안, 시인 오장환
오장환은 1918년 5월 충북 보은에서 태어났습니다. 오부잣집이라고 부를 만큼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낸 오장환은 말이 없고 얌전한 아이로 자랐습니다.
쌀쌀한 겨울의 아침을 노래한 아침이라는 시는 1933년, 휘문고등보통학교(현재의 중학교)에 재학시절 교지에 발표한 시입니다.
[아침 -오장환- 까마위 한마리 게을리 노래하며 감나무에 앉얹다. 자숫물 그릇엔 얼음덩이 둘]
실제 보통학교 3학년까지 살았떤 보은의 생가 주변에는 오래된 감나무가 많았습니다.
오장환은 휘문고등보통학교에서 스승인 정지용 시인을 만나 시를 배우고 큰 영향을 받게 됩니다.
오장환은 이즈음 동화적인 느낌을 주는 짧은 동시를 많이 발표했습니다.
기조수(潮水)가 물러슨 사변(砂邊)에 일광욕을 하오. <조개껍데기> -오장환-
김광균 : 형님.
오장환 : 어, 민석이로구나.
김광균 : 형님 시집이 나왔다고 해서 급히 달려왔소. 이거요?
오장환 시인은 1938년 자신이 경영하던 남만서방이라는 서점에서 <헌사>라는 시집을 간행했습니다.
이육사, 박두진, 정지용, 서정주, 김광균 등의 시인들과 가깝게 지낸 오장환은
일제 강점기의 억압된 환경 속에서도 활발히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 관습에 대한 거부, 잃어버린 조국의 현실 때문에 어디에도 안주하지 못했습니다.
'고향 앞에서' 중에서.. -오장환-
고향 차가운 주막에 들러 누구와 함께 지난날의 꿈을 이야기 하랴.
간간히 잰나비 우는 산기슭에는 아직도 무덤 속에 조상이 잠자고 설레는 바람이 가랑잎을 휩쓸어 간다.
오장환 시강느 1933년 16살의 어린 나이로 데뷔했습니다.
오장환이 활동하던 그 시대에는 어린 나이에 시인으로 데뷔하는 일이 많았다고 하지만
그의 천재성은 서정주, 이용악과 함께 시단의 3천재로 불릴 정도로 뛰어났습니다.
오른쪽 상단이미지부터 이용악 왼쪽 가운데 서정주 오른쪽 하단 오장환
오장환 친구 : 이보게! 장환!
오장환 : 무슨 일인데 그리 허겁지겁 달려오는 겐가?
오장환 친구 : 결국 결렬되고 말았다네. 미·소 공동위원회 말일세
오장환 : 크윽! 결렬이라니?!! 말도 안되는 소리 말게!
오장환 친구 : 자네가 그렇게 노력했는데....
오장환 : 크흑!
남자들 : 저놈이 오장환 인가?(끄덕끄덕)
오장환 친구 : 자..장환아..
남자들 : 어이~ 오장환
오장환 : !
남자들 : 빨갱이 새끼! 단일정부 좋아하시네! 니들 빨갱이만 없어도 벌써 나라를 세우고도 남았다!(퍽퍽)
오장환 : 윽!!
남자들 : 꺼져!! 이 빨갱이새끼!!
'병든 서울'중에서... -오장환- 병든 서울, 아름다운, 그리고 미칠 것 같은 나의 서울아 네 품에 아모리 춤추는 바보와 술취한 망종이 다시 끓어도 나는 또 보았다.
우리들 인민의 이름으로 씩씩한 새 나라를 세우려 힘쓰는 이들을..... 그리고 나는 웨친다. 우리 모든 인민의 이름으로 우리네 인민의 공통된 행복을 위하야 우리들은 얼마나 이것을 바라는 것이냐. 아, 인민의 힘으로 되는 새나라
병상에서 맞이한 해방을 <병든 서울>이란 시로 노래 했지만 조국은 둘로 나뉘었습니다.
하나의 조국을 꿈꾼 오장환은 미·소 공동위원회를 지지하는 활동을 하다 큰 봉변을 당하게 됩니다.
결국 신장병을 앓던 오장환은 병세가 심해지고 불가피한 월북을 하여 모스크바에서 치료를 받습니다.
오장환 시인은 월북 작가라는 이유로 남한에서 금서로 묶여 있었지만 정작 이북에선 그의 흔적조차도 없다고 합니다.
그의 시의 자아처럼 그는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영원한 보헤미안으로 1951년 한국전쟁 중에 33년의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