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소개
군민이 행복한 도시형 농촌 보은입니다.원남1리
삼승면의 소재지로 고려시대부터 원암역이 설치되어 있어 원암이라 하였으며 면사무소 파출소 보건지소등 행정기관이 모두 위치한 삼승면의 중심지임 4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으며 과수 및 벼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고 지방도 502호선을 경계로 원남2구와 구분되어 있다.
위치
면의 남쪽에 위치하며 동쪽은 내망리, 서와남은 옥천군, 북쪽은 서원, 탄금리와 접하고 있다.
연혁
본래 보은군 삼승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송촌, 중촌, 월촌, 상원암, 익동, 온야, 시촌, 일부와 옥천군 안남면의 오산리 일부를 병합하여 "원남리"라 해서 삼승면에 편입되었다. 1989년 1월 1일 다시 안내면 오덕리 일부를 편입하였다.
자연마을
월촌 : 워내미 서쪽에 있는 마을, 시냇물 건너 상원남 사이에 있는 옛 월촌마을임.
마을봉사자
- 이장 정구영
- 새마을지도자 손동일
- 부녀회장 김연순
원남2리
원남1리와 함께 삼승면의 소재지로 장터로 부리며 남산촌 공심이등 세 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으며, 5일장이(3일 8일)서는 곳으로 대부분의 주민이 상업에 종사하며 살고 있다. 농협 신협 우체국등 금융기관이 모두 위치해 있기도 하다.
위치
면의 남쪽에 위치하며 동쪽은 내망리, 서와남은 옥천군, 북쪽은 서원, 탄금리와 접하고 있다.
연혁
본래 보은군 삼승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송촌, 중촌, 월촌, 상원암, 익동, 온야, 시촌, 일부와 옥천군 안남면의 오산리 일부를 병합하여 "원남리"라 해서 삼승면에 편입되었다. 1989년 1월 1일 다시 안내면 오덕리 일부를 편입하였다.
자연마을
- 장터 : 시장이 있는 마을로 옛 시촌마을임.
- 남산촌 : 온배미 동남쪽에 있는 마을임.
마을봉사자
- 이장 이봉희
- 새마을지도자 하준등
- 부녀회장 이희임
원남3리
위치
면의 남쪽에 위치하며 동쪽은 내망리, 서와남은 옥천군, 북쪽은 서원, 탄금리와 접하고 있다.
연혁
본래 보은군 삼승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송촌, 중촌, 월촌, 상원암, 익동, 온야, 시촌, 일부와 옥천군 안남면의 오산리 일부를 병합하여 "원남리"라 해서 삼승면에 편입되었다. 1989년 1월 1일 다시 안내면 오덕리 일부를 편입하였다.
자연마을
- 온배미 : 지역적으로도 밤에도 따뜻한 곳이라 한다.
- 상원남 : 제일 높은 곳에 있는 마을임.
- 샛골 : 옛 익동마을임.
마을봉사자
- 이장 박창규
- 새마을지도자 김진규
내망1리
본래 보은군 삼승면 지역으로서 망월이 안쪽이 되므로 안망월이 뜨는 내망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외망리 하석남리 일부를 병합하여 "내망리"라 하였다.
위치
면의 동남쪽에 위치하며 동쪽은 천남리, 서쪽은 원남리, 남쪽은 옥천군, 북쪽은 탄금리와 접하고 있다.
연혁
본래 보은군 삼승면 지역으로서 망월이 안쪽이 되므로 안망월이 뜨는 내망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외망리 하석남리 일부를 병합하여 "내망리"라 하였다.
자연마을
- 못-망월이 : 외망 동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입구에 못이 있다.
- 망월이 : 내망리의 으뜸마을
- 외-망 : 망월이 남쪽에 있는 마을로 밖에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웃-골 : 외망 동북쪽에 있는 마을
- 하내망 : 외망 아랫쪽에 있는 마을
마을봉사자
- 이장 김형주
- 새마을지도자 전성진
- 부녀회장 김용숙
내망2리
내망리중 하내망 또는 새말이라고 하며 내망1리의 동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임. 연안차씨와 김해김씨외 여러 성씨가 어울려 살고 있으며 주민의 대다수가 역시 과수와 벼농사를 주업으로 하고 살고 있다.
위치
면의 동남쪽에 위치하며 동쪽은 천남리, 서쪽은 원남리, 남쪽은 옥천군, 북쪽은 탄금리와 접하고 있다.
연혁
본래 보은군 삼승면 지역으로서 망월이 안쪽이 되므로 안망월이 뜨는 내망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외망리 하석남리 일부를 병합하여 "내망리"라 하였다.
자연마을
- 못-망월이 : 외망 동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입구에 못이 있다.
- 망월이 : 내망리의 으뜸마을
- 외-망 : 망월이 남쪽에 있는 마을로 밖에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웃-골 : 외망 동북쪽에 있는 마을
- 하내망 : 외망 아랫쪽에 있는 마을
마을봉사자
- 이장 김복훈
- 새마을지도자 설진국
- 부녀회장 강경임
탄금1리
막은골이라 불리며 삼승면에서 가장 소규모의 마을로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위치
면의 중심부에 위치하며 동쪽은 천남리, 서쪽은 서원리, 남쪽은 원남 내망리, 북쪽은 상가리에 접하고 있다.
연혁
본래 보은군 삼승면 지역으로서 지형이 거문고와 흡사하다하여 탄금대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막은리와 서원리 일부를 병합하여 "탄금리"라 하고 면소재지가 되었는데 1943년 "원남리"면사무소로 이전하였다.
자연마을
- 탄금대 : 탄금리 중심 마을로 하내망 후산봉의 옥녀봉과 막음골에서 옥녀가 앉아 "거문고"를 타는 형국이라 한다. 한일합방 초기에 면사무소가 있었고, 면내에서 최초로 사립학교가 세워졌다고 한다.
- 막음-골 : 탄금대 북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좌우로 산이 가로막고 앞은 수목으로 가려져서 마치 막을 친것 같다.
마을봉사자
- 이장 홍성호
- 새마을지도자 구재정
탄금2리
막은골이라 불리며 삼승면에서 가장 소규모의 마을로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위치
면의 중심부에 위치하며 동쪽은 천남리, 서쪽은 서원리, 남쪽은 원남 내망리, 북쪽은 상가리에 접하고 있다.
연혁
본래 보은군 삼승면 지역으로서 지형이 거문고와 흡사하다하여 탄금대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막은리와 서원리 일부를 병합하여 "탄금리"라 하고 면소재지가 되었는데 1943년 "원남리"면사무소로 이전하였다.
자연마을
- 탄금대 : 탄금리 중심 마을로 하내망 후산봉의 옥녀봉과 막음골에서 옥녀가 앉아 "거문고"를 타는 형국이라 한다. 한일합방 초기에 면사무소가 있었고, 면내에서 최초로 사립학교가 세워졌다고 한다.
- 막음-골 : 탄금대 북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좌우로 산이 가로막고 앞은 수목으로 가려져서 마치 막을 친것 같다.
마을봉사자
- 이장 정용찬
- 새마을지도자 정근찬
- 부녀회장 이용숙
달산1리
본래 월산 또는 달미, 달뫼라고불리며 달처럼 생긴산이 있어 불리워진 이름으로 현재의 달산1리이다. 양달말 응달말 두 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지며 벼농사와 과수를 주업으로 하고 있으며 마을앞으로 보청천을 경계로 탄부면과 접하여 넓은 들로 이루어져 질좋은 쌀을 생산하고 있다. 현재 인천이씨(청도군수공파)집성촌으로 유명하다.
위치
면 소재지로부터 6km지점인 면의 동쪽에 위치하여 동은 탄부면,서는 상가리,남은 천남리,북은 우진리와 접하고 있다.
연혁
본래 보은군 삼승면의 지역으로서 달처럼 생긴 산이 있어 달메 또는 월산이라 하였는데,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하가리를 병합하여 달산리라 하였다.
자연마을
- 달미[마을] : 가습 서북쪽에 있는 마을.쉿산이 달처럼 생겼다 하여 라 부르던 것이 변한 것임
- 양달말[마을] : 달미의 양지쪽에 있는 마을
- 용달말[마을] : 달미의 음지쪽에 있는 마을
마을봉사자
- 이장 이달권
- 새마을지도자 이종호
- 부녀회장 서희분
달산2리
위치
면의 동쪽에 있으며 동쪽은 탄부면, 서쪽은 상가리, 남쪽은 천남리, 북쪽은 우진리에 접하고 있다.
연혁
본래 보은군 삼승면 지역으로서 달처럼 생긴 산이 있으므로 달메 또는 월산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가리를 병합하여 "달산리"라 하였다.
자연마을
가습(可習) : 달미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책을 펴 놓은 것 같이 지형 이 생겼다고 한다. 경주김씨(慶州金氏) 집성마을이다.
마을봉사자
- 이장 김용해
송죽리
삼승면의북쪽에 위치하는 마을로 보은읍, 탄부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과수 축산 벼농사를 위주로 생활하고 있으며 납식이 새터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고 송죽초등학교가 위치해 있다.옛날에 소나무와 대나무가 많아 송죽리라 하였으나 현재는 대나무는 거의 없고 소나무만 솔밭이라 하여 남아있다.
위치
면의 북쪽에 위치하며 동쪽은 탄부면, 서쪽은 둔덕 선곡리 남쪽은 우진리, 북쪽은 보은읍에 접하고 있다.
연혁
본래 보은군 서니면 지역으로서 소나무와 대나무가 많이 있으므로 송죽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황토리 일부를 병합하여 "송죽리"라 하고 삼승면에 편입되었다.
자연마을
- 납식이 : 송죽 동남쪽에 있는 마을
- 새터 : 납식이에 달린 마을로 새로 이루어진 마을
- 점말 : 질토질이 많아 질그릇을 굽던 마을
마을봉사자
- 이장 육철수
- 새마을지도자 김학환
선곡1리
금적산 금송아지의 머리부분에 위치하는 선곡리는 그중선우실을 선곡1리로 나누고 있다. 선곡1리는 금적산 아래 과수와 벼농사 등을 주업으로 해서 살고있는 마을로 마을에는 최태하 가옥 및 어윤중생가, 금화서원, 계당등의 문화 유산이 있으며 화순최씨(부정공파) 집성촌이었으나 현재는 여러 성씨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수한거현간의 군도 확포장공사가 한참 진행중이다.
위치
면의 서북쪽에 위치하며 동쪽은 송죽, 우진리, 서쪽은 수한면, 남쪽은 서원리, 북쪽은 둔덕리와 접하고 있다.
연혁
본래 보은군 서니면 지역으로서 선우실 또는 선곡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선동, 사각, 황토리 일부를 병합하여 선곡리라 하고 삼승면에 편입되었다.화순최씨 집성촌이다.
자연마을
- 동편 : 선우실 동쪽에 있는 마을
- 상웃말 : 선우실 서남쪽 맨 위쪽에 있는 마을
- 서편 : 선우실 서쪽에 있는 마을
- 아랫말 : 선우실 동북쪽 아래쪽 마을
- 웃-말 : 선우실 윗쪽에 있는 마을
마을봉사자
- 이장 한혁동
- 새마을지도자 박건홍
- 부녀회장 남선애
선곡2리
선곡2리는 금적산 아래 황토말이라 불리면 전주이씨(익한대군후손)이 집성을 이루며 과수및 담배등 농업에 종사하며 살고 있다.
위치
면의 서북쪽에 위치하며 동쪽은 송죽, 우진리, 서쪽은 수한면, 남쪽은 서원리, 북쪽은 둔덕리와 접하고 있다.
연혁
본래 보은군 서니면 지역으로서 선우실 또는 선곡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선동, 사각, 황토리 일부를 병합하여 선곡리라 하고 삼승면에 편입되었다.화순최씨 집성촌이다.
자연마을
- 동편 : 선우실 동쪽에 있는 마을
- 상웃말 : 선우실 서남쪽 맨 위쪽에 있는 마을
- 서편 : 선우실 서쪽에 있는 마을
- 아랫말 : 선우실 동북쪽 아래쪽 마을
- 웃-말 : 선우실 윗쪽에 있는 마을
- 황토말 : 사각골 남쪽에 있는 마을로 황토흙이 많다.
마을봉사자
- 이장 김래덕
- 부녀회장 김미경
선곡3리
선우실, 황토말과 함께 사각골이라 하여 선곡리에 해당되며 사각골을 사각동이라 하여 선곡3리로 구분한다. 마을모양이 마치 사각형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벼농사 및 과수를 주업으로 하여 살고 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위치
면의 서북쪽에 위치하며 동쪽은 송죽, 우진리, 서쪽은 수한면, 남쪽은 서원리, 북쪽은 둔덕리와 접하고 있다.
연혁
본래 보은군 서니면 지역으로서 선우실 또는 선곡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선동, 사각, 황토리 일부를 병합하여 선곡리라 하고 삼승면에 편입되었다.화순최씨 집성촌이다.
자연마을
- 동편 : 선우실 동쪽에 있는 마을
- 사각골 : 선우실 동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주위의 산이 사각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한다.
- 상웃말 : 선우실 서남쪽 맨 위쪽에 있는 마을
- 서편 : 선우실 서쪽에 있는 마을
- 아랫말 : 선우실 동북쪽 아래쪽 마을
- 웃-말 : 선우실 윗쪽에 있는 마을
마을봉사자
- 이장 신건목
- 새마을지도자 박운영
- 부녀회장 이종심
천남1리
삼승산을 뒤로 하고 보청천과 넓은 들판을 감싸안은 배산임수형 마을이며 삼년성을 향해 북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삼승산에서 뻗어내린 산의 양날개가 동네를 포근히 감싸고 있으며, 앞 도로는 옥천과 상주를 연결하는 주요도로가 있으며 마을 경로당을 줌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위치
면의 동남쪽에 위치하며 동쪽은 탄부면, 서쪽은 탄금리, 남쪽은 내망리, 북쪽은 달산리와 접하고 있다.
연혁
본래 보은군 삼승면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각동 상석남, 하석남 일부를 병합하여 오덕천 남쪽에 있다하여 "천남리"라 하였다.
자연마을
- 각-골 : 성남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뒷산봉우리에 사방으로뿔이 났다고 한다.
- 삼승이 : 새뜸 서남쪽에 있는 마을. 옛날에 강씨, 이씨, 신씨등 세 사람이 터를 잡아 마을을 이루었다 한다.
- 새-뜸 : 각골 남쪽에 새로된 마을
- 성남 : 천남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위뜸과 아래뜸으로 구분되어 있다.
전설 및 설화
도장골
뫼봉 우측골에 도장골이 있는데 구전되어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옛날 옛날에 성남에 사는 농부가 나무하러 산에 가는중 한 노인이 혼자 앉아서 하는 말이 하며 괄시를 하니 물을 삼승이로 내려보냈다는 전설이 구전되어 오는데 지금도 그 곳에 가면 인공적으로 물을 막은 것 같이 되어 있으며 그로부터 성남에는 수재가 많이 나왔다고 한다. 앞으로도 많은 인재가 나올것이라는 전설로 이 노인이 도사라고 해서 도장골이라 한다.
마을봉사자
- 이장 장응서
천남2리
탄부면 성지리와 경계를 이루며 과수 및 벼농사 축산을 주업으로 하여 살고 있으며 각골을 중심으로 502호 지방도아래쪽의 새뜸을 합해 천남2리를 이루고 있다.마을앞으로 넓은 뜰이 펼쳐져있고 오덕천을 사이에 두고 미질좋은 벼를 수확하고 있다. 진주강씨 집성촌이나 은진송씨, 진씨, 김해허씨등 현재는 여러성씨가 함께 살고 있다.
위치
면의 동남쪽에 위치하며 동쪽은 탄부면, 서쪽은 탄금리, 남쪽은 내망리, 북쪽은 달산리와 접하고 있다.
연혁
본래 보은군 삼승면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각동 상석남, 하석남 일부를 병합하여 오덕천 남쪽에 있다하여 "천남리"라 하였다.
자연마을
- 각-골 : 성남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뒷산봉우리에 사방으로뿔이 났다고 한다.
- 삼승이 : 새뜸 서남쪽에 있는 마을. 옛날에 강씨, 이씨, 신씨등 세 사람이 터를 잡아 마을을 이루었다 한다.
- 새-뜸 : 각골 남쪽에 새로된 마을
- 성남 : 천남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위뜸과 아래뜸으로 구분되어 있다.
마을봉사자
- 이장 강병우
- 부녀회장 펜스리
천남3리
천남1리와 천남2리 사이 삼승산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양짓말 음짓말 아랫말로 구분되어 벼농사와 과수를 주로하여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천남2리와 마찬가지로 마을앞 쪽으로 오덕천이 흐르고 그 주변으로 넓은 뜰을 이루어 벼농사가 발달하였다.
위치
면의 동남쪽에 위치하며 동쪽은 탄부면, 서쪽은 탄금리, 남쪽은 내망리, 북쪽은 달산리와 접하고 있다
연혁
본래 보은군 삼승면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각동 상석남, 하석남 일부를 병합하여 오덕천 남쪽에 있다하여 "천남리"라 하였다.
자연마을
- 각-골 : 성남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뒷산봉우리에 사방으로뿔이 났다고 한다.
- 삼승이 : 새뜸 서남쪽에 있는 마을. 옛날에 강씨, 이씨, 신씨등 세 사람이 터를 잡아 마을을 이루었다 한다.
- 새-뜸 : 각골 남쪽에 새로된 마을
- 성남 : 천남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위뜸과 아래뜸으로 구분되어 있다.
마을봉사자
- 이장 이재승
- 새마을지도자 이재현
- 부녀회장 권영선
상가리
면소재지로부터 3.5km 북쪽의 면이 중심부에 위치하며 과수 및 벼농사를 중심으로 삼승면에서 제일 부유한 마을로 손꼽히고 있다. 원래 가습의 위쪽이라 하여 윗가습, 상가라 하였으며 신근이, 새뜸, 중가습 음달말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행정구역상 삼승초등학교가 위치해 있다.
위치
면의 중심부에 위치하며 동쪽은 달산리, 서쪽은 서원리, 남쪽은 탄금리, 북쪽은 우진리와 접하고 있다
연혁
본래 보은군 삼승면 지역으로서 가습위쪽 마을이라 하여 윗가습 또는 상가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중가 막은리 일부를 병합하여 "상가리"라 하였다.
자연마을
- 신근이 : 상가 동쪽에 있는 중심마을
- 새-뜸 : 신근이 서남쪽에 새로 생긴 마을
- 중가습 : 신근이 동쪽에 있는 마을로 신근이와 가습사이에 있다.
- 선진마을 :
마을봉사자
- 이장 김덕우
- 새마을지도자 장상일
- 부녀회장 이민숙
우진리
면의 북쪽에 위치하며 북쪽으로 보청천을 경계로 탄부면과 접하고 있으며 솔안과 우진부리를 합쳐 우진리라 한다. 과수 및 축산 벼농사를 주업으로 하고있으며 특히 유일하게 농공단지가 들어서 있어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위치
면의 북쪽에 위치하며 동쪽은 달산리와 탄부면, 서쪽은 선곡리, 남쪽은 서원 상가리, 북쪽은 송죽리에 접하고 있다.
연혁
본래 보은군 서니면 지역인데 산부리 위에 있으므로 우진부리 또는 우진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황토리 일부와 삼승면의 달산리 일부를 병합하여 "우진리"라 하고 삼승면에 편입되었다.
자연마을
- 소란-말 : 우진 북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뒷산에 소나무가 많아 솔-안말이라 부르던 것이 변하였다.
- 우진부리 : 우진리 중심 마을로 고려때 산부리 위에 구내의 우군과 좌군이 있었는데 그 중 우군의 진이 있던 곳이라 하여 우진부리라 부른다 한다. 또한 옛날 우장군이 군사를 이끌고 와서 진을 쳤던 곳이라 하는데 뒷산에는 당시 기를 꽂았던 구멍이 뚫린 바위가 있고 근처에서 돌로 만든 화살촉도 발견한 일도 있다. 경주이씨 집성마을이다.
마을봉사자
- 이장 김필제
- 새마을지도자 최한국
- 부녀회장 김용애
둔덕1리
삼승면의 제일 북쪽에 위치한 마을로 보은읍 지산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작은 마을로 과수와 벼농사를 위주로 생활하고 있는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위치
면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과 북은 보은읍 서와 남은 선곡 송죽리와 접하고 있다.
연혁
본래 보은군 서니면 지역으로 둔덕에 마을이 있다 하여 둔덕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양지리를 병합하여 "둔덕리"라 하고 삼승면에 편입되었다.
자연마을
- 점촌 : 둔덕 동남쪽에 있는 마을. 전에 옹기점이 있었다.
- 웃골 : 한우물 위쪽에 있는 마을
- 양짓말 : 둔덕 양지쪽에 있는 마을
전설 및 설화
효자연못
옛날 삼승면 둔덕리 백씨성을 가진 젊은이가 흘어머니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비록 가난하게 살았지만 젊은이는 어머니에게 얼마나 효성이 지극한지 그 마을은 물론 이웃 마을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하나뿐인 어머니를 온갖 정성을 다하여 잘 모셨다.
그런던 어느 해 어머니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었다. 젊은이는 온갖 정성을 다하여 어머니의 병시중을 들었지만 그의 어머니의 병환은 좀처럼 낮지 않았다. 용하다는 의원이 있다면 백리 밖까지 가서 모셔다 어머니를 치료하였고 좋다는 약은 모조리 구하여 복용토록 하였지만 어머니의 병환은 점점 더 깊어만 갔다.
어느 날!
그 날은 새벽부터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귀가 떨어져 나가는 듯이 몹시 추운 날이었다. 병중에 어머니가 생선이 먹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그러나 워낙 가난한 젊은이는 생선을 돈을 주고 살 수가 없는 형편이었고 연못이나 냇가에 나가 잡을래야 모두 꽁꽁 얼어 붙었으므로 잡을 수도 없었다.
그리하여 젊은이는 청산 강가에 가서 잡든지 누구에게 사정을 하든지 하여 구하고자 집을 나섰다. 눈보라는 그쳤지만 눈과 바람은 몹시도 세차게 불어 쌓인 눈이 하얗게 먼지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젊은이는 옷깃을 여미고 옷속으로 고개를 웅크리고 걸었지만 후들 후들 떨렸다. 정말로 칼날같이 추운 날이었다. 젊은이가 동구밖에 있는 큰 연못가에 이르렀을 때였다. 갑자기 연못에서"우지직,우지직"소리가 들려왔다. 젊은이는 발길을 멈추고 연못을 바라보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꽁꽁 얼어붙었던 연못 한쪽의 얼음이 갈라지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갈라진 얼음사이로 팔뚝만한 잉어 한마리가 뛰어 올라왔다. 한마리 두 마리 잉어는 계속하여 10여마리나 뛰어 올라와서는 얼음 위에서 펄떡펄떡 뛰고 있었다. 젊은이는 너무나 기뻤다. 정신없이 잉어를 잡아 가지고 한걸음에 집으로 돌아왔다.
젊은이는 정성을 다하여 잉어를 삶아 어머니에게 드렸다. 잉어를 잡수신 어머니는 그날부터 위중하던 병이 차차 낫기 시작했다. 이와 같이 소문이 나자 듣는 사람마다 젊은이의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성이 하늘을 감동시킨 결과로 이와 같은 기적이 나타났다고 말하였다. 그 후부터 둔덕못은 "효자못"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마을봉사자
- 이장 김두희
- 새마을지도자 김준희
- 부녀회장 서은순
둔덕2리
한우물이라고 하며 광주안씨 등이 모여사는 작은 마을로 과수 및 벼농사를 주로하여 살아가고 있다.
위치
면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과 북은 보은읍 서와 남은 선곡 송죽리와 접하고 있다.
연혁
본래 보은군 서니면 지역으로 둔덕에 마을이 있다 하여 둔덕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양지리를 병합하여 "둔덕리"라 하고 삼승면에 편입되었다.
자연마을
- 한-우물 : 점촌 서쪽에 있는 마을로 참샘이 있다.
- 점촌 : 둔덕 동남쪽에 있는 마을. 전에 옹기점이 있었다.
- 웃골 : 한우물 위쪽에 있는 마을
- 양짓말 : 둔덕 양지쪽에 있는 마을
전설 및 설화
효자연못
옛날 삼승면 둔덕리 백씨성을 가진 젊은이가 흘어머니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비록 가난하게 살았지만 젊은이는 어머니에게 얼마나 효성이 지극한지 그 마을은 물론 이웃 마을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하나뿐인 어머니를 온갖 정성을 다하여 잘 모셨다.
그런던 어느 해 어머니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었다. 젊은이는 온갖 정성을 다하여 어머니의 병시중을 들었지만 그의 어머니의 병환은 좀처럼 낮지 않았다. 용하다는 의원이 있다면 백리 밖까지 가서 모셔다 어머니를 치료하였고 좋다는 약은 모조리 구하여 복용토록 하였지만 어머니의 병환은 점점 더 깊어만 갔다.
어느 날!
그 날은 새벽부터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귀가 떨어져 나가는 듯이 몹시 추운 날이었다. 병중에 어머니가 생선이 먹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그러나 워낙 가난한 젊은이는 생선을 돈을 주고 살 수가 없는 형편이었고 연못이나 냇가에 나가 잡을래야 모두 꽁꽁 얼어 붙었으므로 잡을 수도 없었다.
그리하여 젊은이는 청산 강가에 가서 잡든지 누구에게 사정을 하든지 하여 구하고자 집을 나섰다. 눈보라는 그쳤지만 눈과 바람은 몹시도 세차게 불어 쌓인 눈이 하얗게 먼지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젊은이는 옷깃을 여미고 옷속으로 고개를 웅크리고 걸었지만 후들 후들 떨렸다. 정말로 칼날같이 추운 날이었다. 젊은이가 동구밖에 있는 큰 연못가에 이르렀을 때였다. 갑자기 연못에서"우지직,우지직"소리가 들려왔다. 젊은이는 발길을 멈추고 연못을 바라보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꽁꽁 얼어붙었던 연못 한쪽의 얼음이 갈라지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갈라진 얼음사이로 팔뚝만한 잉어 한마리가 뛰어 올라왔다. 한마리 두 마리 잉어는 계속하여 10여마리나 뛰어 올라와서는 얼음 위에서 펄떡펄떡 뛰고 있었다. 젊은이는 너무나 기뻤다. 정신없이 잉어를 잡아 가지고 한걸음에 집으로 돌아왔다.
젊은이는 정성을 다하여 잉어를 삶아 어머니에게 드렸다. 잉어를 잡수신 어머니는 그날부터 위중하던 병이 차차 낫기 시작했다. 이와 같이 소문이 나자 듣는 사람마다 젊은이의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성이 하늘을 감동시킨 결과로 이와 같은 기적이 나타났다고 말하였다. 그 후부터 둔덕못은 "효자못"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마을봉사자
- 이장 안효익
- 새마을지도자 이경선
- 부녀회장 김정순
서원1리
본래 서원이 있었던 곳이라 서원이라고도 하며 서쪽의 언저리라 하여 서원이라고도 한다. 배나무골, 감나무골, 신촌 세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졌으며 마을 주민 대부분이 과수재배를 통해 고소득을 올리고 있는 마을이다.
위치
면소재지로부터 북서쪽 205km 지점으로 면의 서쪽에 위치하며,동은 탄금리,서는 옥천군,남은 원남리,북은 선곡리와 접하고 있다.
연혁
본래 보은군 삼승면지역으로서 서쪽 언저리라 하여 서원이라 하였는데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이동과 서니면의 황토리 일부를 병합하여 서원리라 하고 삼승면에 편입하였다.
자연마을
- 감나무골[마을] : 서원 북쪽에 있는마을.감나무가 많음
- 배나무골[마을] : 감나무골 북쪽에 있는 마을.마을 앞에 큰 배나무가 있고 서원1리의 중심마을임
- 서원[마을] : 금적산 아래에 있는 마을로 서북쪽은 병풍을 친듯 하고 삼승면에서 제일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음.조선 현종째 우암 송시열의 아우인 세한재 송시도가 일경당이란 서숙을 건립하고 강학하므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음
- 시동[마을] : →감나무골
- 신촌[마을] : 배나무골 동남쪽에 있는 마을.삼승초등학교가 있음
- 웃말[마을] : 서원 서쪽 위쪽에 있는 마을
- 이동[마을] : →배나무골
전설 및 설화
금적산의 금송아지와 금비둘기
보은군 삼승면 서원리에 남북으로 삼태기 모양으로 길게 뻗은 산이 금적산이고 이 산에는 전 국민이 3일간 먹을 수 있는 보배가 묻혀 있다고 전해오는데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다.
먼 옛날이다.
이 산에는 금송아지와 금비둘기가 살고 있었다. 금송아지는 금비둘기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하여 산기슭에 밭을 일구어 금비둘기가 좋아하는 여러 가지 곡식을 갖추어 심었고 양지바른곳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바위아래 옹달샘을 파서 보금자리를 마련한 후 금비둘기에게 청혼하여 둘은 결혼하여 내외가 되었다.
금송아지와 금비둘기는 누구나 부러워 하는 금슬좋은 한쌍의 부부로서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던 어느해 여름 불행하게도 금송아지는 밭을 갈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두 눈이 멀고 말았다.
그후 금비둘기는 눈먼 남편을 열심히 봉야하였으나 금비둘기의 벌이로서는 도저히 금 송아지를 충족히 먹일 수 없었다. 그렇게 몇해가 지나자 아내인 금비둘기는 차차 남편섬기기가 고통스럽게 느껴 자연히 짜증을 냈고 둘은 자주 다투게 되었다.
어느날 하루종일 남편을 위해 식량을 물어나르던 금비둘기는 마침내"나도 이제는 도저히 못 참겠어요.당신을 위한 희생도 하루 이틀이지 허구헌날 날개쭉지가 빠지도록 양식을 물어 날라도 배고프다고 아우성이니 이젠 정말 지겨워 못살겠어요. 난 나대로 갈것이니 당신은 당신대로 살 길을 찾아 보도록 하세요." 하고는 금송아지가 울면서 붙잡았지만 매정스럽게 뿌리치고 어디론지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앞을 보지 못하는 불쌍한 금송아지는 그후 산기슭을 헤매며 아내를 부르다가 지친 나머지 그 자리에 쓰러져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 뒤부터 금송아지가 죽은 산을 금적산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금송아지가 죽을 때 머리는 북쪽으로 두고 꼬리는 남쪽으로 향하였기 때문에 지금도 꼬리쪽인 옥천군 안내면 오덕리에는 사금이 많이 나고 머리가 있는 북쪽인 보은군 삼승면 선곡리에는 부자가 많이 난다고 전해지고 있다.
마을봉사자
- 이장 송재일
- 새마을지도자 김병국
- 부녀회장 김옥주
서원2리
서원2리는 원서원이라 불리며 마치 금적산이 서북쪽으로 병풍을 친듯 마을을 감싸고 있는 곳으로 서원이 있었던곳이라 원서원이라 한다. 과수 및 벼농사를 위주로 하여 살고 있다.
위치
면소재지로부터 북서쪽 205km 지점으로 면의 서쪽에 위치하며,동은 탄금리,서는 옥천군,남은 원남리,북은 선곡리와 접하고 있다.
연혁
본래 보은군 삼승면지역으로서 서쪽 언저리라 하여 서원이라 하였는데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이동과 서니면의 황토리 일부를 병합하여 서원리라 하고 삼승면에 편입하였다.
자연마을
- 감나무골[마을] : 서원 북쪽에 있는마을.감나무가 많음
- 배나무골[마을] : 감나무골 북쪽에 있는 마을.마을 앞에 큰 배나무가 있고 서원1리의 중심마을임
- 서원[마을] : 금적산 아래에 있는 마을로 서북쪽은 병풍을 친듯 하고 삼승면에서 제일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음.조선 현종째 우암 송시열의 아우인 세한재 송시도가 일경당이란 서숙을 건립하고 강학하므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음
- 시동[마을] : →감나무골
- 신촌[마을] : 배나무골 동남쪽에 있는 마을.삼승초등학교가 있음
- 웃말[마을] : 서원 서쪽 위쪽에 있는 마을
- 이동[마을] : →배나무골
전설 및 설화
금적산의 금송아지와 금비둘기
보은군 삼승면 서원리에 남북으로 삼태기 모양으로 길게 뻗은 산이 금적산이고 이 산에는 전 국민이 3일간 먹을 수 있는 보배가 묻혀 있다고 전해오는데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다.
먼 옛날이다.
이 산에는 금송아지와 금비둘기가 살고 있었다. 금송아지는 금비둘기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하여 산기슭에 밭을 일구어 금비둘기가 좋아하는 여러 가지 곡식을 갖추어 심었고 양지바른곳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바위아래 옹달샘을 파서 보금자리를 마련한 후 금비둘기에게 청혼하여 둘은 결혼하여 내외가 되었다.
금송아지와 금비둘기는 누구나 부러워 하는 금슬좋은 한쌍의 부부로서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던 어느해 여름 불행하게도 금송아지는 밭을 갈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두 눈이 멀고 말았다.
그후 금비둘기는 눈먼 남편을 열심히 봉야하였으나 금비둘기의 벌이로서는 도저히 금 송아지를 충족히 먹일 수 없었다. 그렇게 몇해가 지나자 아내인 금비둘기는 차차 남편섬기기가 고통스럽게 느껴 자연히 짜증을 냈고 둘은 자주 다투게 되었다.
어느날 하루종일 남편을 위해 식량을 물어나르던 금비둘기는 마침내"나도 이제는 도저히 못 참겠어요.당신을 위한 희생도 하루 이틀이지 허구헌날 날개쭉지가 빠지도록 양식을 물어 날라도 배고프다고 아우성이니 이젠 정말 지겨워 못살겠어요. 난 나대로 갈것이니 당신은 당신대로 살 길을 찾아 보도록 하세요." 하고는 금송아지가 울면서 붙잡았지만 매정스럽게 뿌리치고 어디론지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앞을 보지 못하는 불쌍한 금송아지는 그후 산기슭을 헤매며 아내를 부르다가 지친 나머지 그 자리에 쓰러져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 뒤부터 금송아지가 죽은 산을 금적산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금송아지가 죽을 때 머리는 북쪽으로 두고 꼬리는 남쪽으로 향하였기 때문에 지금도 꼬리쪽인 옥천군 안내면 오덕리에는 사금이 많이 나고 머리가 있는 북쪽인 보은군 삼승면 선곡리에는 부자가 많이 난다고 전해지고 있다.
마을봉사자
- 이장 민공남
- 새마을지도자 김섭
- 부녀회장 박창숙
담당자 정보
- 담당부서 삼승면 총무팀
- 전화번호 043)540-4181 ~ 85
- 최종수정일 2023.09.25